자발적 백수의 남미여행

6개월간 남미를 여행한 허소라 씨 이야기

웃음소리로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면 허소라 씨는 유쾌하다. 대화 도중 웃음 포인트가 생길 때마다 ‘아하하하’ 밝고 높은 음성으로 빵빵 웃음을 터뜨리는 소라 씨. 그는 유쾌하고 밝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하는 당찬 여성인가 하면 그 안에 소녀감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요즘엔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훌쩍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그의 여행 이야기 또한 그만의 우주를 담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게스트 허소라 씨를 만나보자.

갈라파고스의 흔한 풍경

갈라파고스의 흔한 풍경

3년의 직장생활과 퇴사

Q. 요즘 세계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왜 여행을 떠나게 되었나?

사실 여행을 떠나고 싶어 회사를 그만 둔 것은 아니고 회사를 그만 두고 시간이 난 김에 여행을 가게 됐다. 원래는 아프리카를 가고 싶었는데 남미 여행을 다녀 온 회사 선배가 남미는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해서 남미로 향하게 되었다.

Q. 회사를 그만 둔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 선배들의 모습을 보니까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았다. SK C&C에서 개발자로 일했는데 여자 선배도 몇 명 없었고 여자 과장님도 매일 야근에 치이고 자기 인생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입사 3년 차 때, 첫 사수였던 선배가 자살을 했다. 그 사건이 준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나중에 회사 다니기가 힘들어졌을 때 그 일 때문에 오히려 그만두기가 수월했다. 그럴 바에야 그냥 회사를 그만두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2015년, 내가 스물아홉일 때 3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내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확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남미여행

Q.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여행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달라.

여행 중에 현지 여행사에서 잠깐 일했다.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에 도착해서 우연히 만난 한국 여자분이 일자리를 넘겨주고 갔다. 갈라파고스에 오는 한국인들이 의외로 많은데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투어상품을 팔고 가이드를 해주는 일이었다. 여행사에서 숙식도 제공해주고 재밌는 경험일 것 같아 시작했는데 싱글 대디인 사장이 대쉬하는 바람에 곤란해져서 그만뒀다. 알고 보니 그곳에 오는 모든 여자한테 치근대는 사람이었다. (웃음)

Q. 여자 혼자 여행하면서 불안하진 않았나?

실제로 혼자 여행한 기간은 6개월 중에 2주 남짓이었다. 대부분 동행을 만들어 같이 다녔기 때문에 혼자 여행하는 불안은 없었다. 여행 중에 카우치서핑을 몇 번 했는데 집주인에게 남동생이랑 같이 간다고 쪽지를 보냈을 때, 같이 오라고 한 경우에만 방문했다. 사실 그 남동생은 여행 중 알게 된 한국인 동생인데, 집주인들이 처음에는 오라고 했다가 남동생이랑 같이 간다고 하면 거절하는 경우도 있더라.

Q. 남자들이란. (웃음) 또 다른 재밌는 일은 없었나?

칠레 안토파가스타에서 노점상처럼 물건을 팔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기념품, 껌, 옷, 여행 중에 산 물건 등등 배낭 무게를 좀 줄여보려고 좌판을 펼쳤다. 안토파가스타는 외국인이 많이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해했던 것 같다. 물건도 꽤 잘 팔렸는데 누가 신고한 건지 경찰이 와서 허가증이 있냐고 물었다. 벌금 물 것 같아서 결국 못 알아듣는 척 도망쳤다.

여행 중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여행 중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Q. 여행 중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별한 경험인 것 같다. 어느 나라가 가장 기억에 남나?

칠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분에 칠레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 칠레가 위아래로 길지 않나. 북부 아따까마 사막부터 수도 산티아고까지 2,000km에 달하는 거리를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는데 그때 만난 운전자들이 참 친절했고 고마웠다.

Q. 정말 여행 중에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다. 히치하이킹 어렵지 않았나? 잘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처음에는 엄청 부끄러웠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다. 한 10분 만에 아따까마에서 우리가 가려는 안토파가스타로 이동하는 후안 아저씨를 만났다. 우체국 국장으로 일하시는 분이었다. 이렇게 운이 좋을 때는 금방 차를 탔지만 4시간 만에 겨우 성공한 적도 있었다. 운전하면서 말동무가 되기 때문인지 트럭운전사들이 많이 태워주셨다. 히치하이킹을 하려면 고속도로 입구에서 하는 것이 좋고 운전자와 눈을 마주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Q. 6개월 여행 기간은 정해놓고 간 건가?

처음에는 두 달만 다녀와야지 생각하고 티켓을 끊었는데 처음 쿠바여행이 길어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돌아오는 날을 계속 늦추게 됐다. 연장 수수료만 거의 100만 원을 더 냈는데 최대 기한이 6개월이라서 그랬지 아마 1년이었으면 1년 동안 여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6개월이라 다행이었다. 1년 여행했으면 돈을 더 많이 썼을 테니까.

칠레에서 히치하이킹

칠레에서 히치하이킹

여행 이후의 삶

Q. 삶을 확 변화시키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고 그렇게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 결과에 만족하나?

예전 회사 다닐 때 눈앞에 그려지던 미래와 확실히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원하는 대로 된 셈이다. 여행 후에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직업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여행사에서 여행 인솔자로 일하고 있다. 여행자들을 인솔해서 한 달 동안 1년에 3~4차례 남미로 여행을 간다.

Q. 지금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쿠바 여행 중에 우연히 국내 여행사 가이드로 일하는 언니를 만났는데 나보고 가이드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관심이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마침 친구가 지금 회사의 모집공고를 알려줬다. 그렇게 우연의 연속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딱 1년이 되었는데 아직은 재밌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여행 가 있는 순간이 더 좋다.

Q. 우연이 계속되면 인연 같다. 장기여행 뒤에 외적인 변화 말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내적인 변화도 있었나?

여행 뒤에 내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사실 나 자신이 많이 변한 것 같지 않다. 그냥 주변 환경과 내가 설정한 방향만 바뀌었을 뿐 나는 똑같다. 다만 좀 더 잘 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한국 사회에서 꼭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좋은 직장, 집 한 채, 차 한 대를 향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용기 말이다. 여행하면서 참 다양한 삶의 모습을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에콰도르 키토의 호스텔에서 만난 가족인데 아이가 4~5살쯤인데도 장기여행을 하고 있었다. 확실치 않지만, 유럽 사람들 같았는데 엄마, 아빠는 낮이면 나가서 액세서리 같은 것을 팔고 호스텔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이를 돌봐줬다. 다른 여행자들도 거리에 나와 악기를 연주하거나 물건을 팔 때면 그 아이도 엄마, 아빠가 있는 거리를 활보하며 마치 제집인 양 뛰어놀았다.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기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크도록 놔두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참 신선했는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소라 씨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장기여행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같이 여행을 가는 손님들이 50~60대 부모님 세대가 많은데 가끔 나한테 물어본다. ‘소라 씨 여행이 뭐라고 생각해?’ 그럼 나는 ‘여행은 일상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여행은 인생이랑 비슷하다. 장기여행을 해보니 여행이 매일 행복하지가 않더라. 여행 대부분은 힘들고 어떤 한순간만 행복하다. 그런데 그 한순간이 좋아서 계속 여행하게 된다. 가끔 행복한 한순간을 위해 여행하는 거다. 여행은 힘들지만 그래도 사무실보다는 배낭 메고 여행 가 있는 그 순간이 좋다. 여행을 가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지 않을까? 장기여행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행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세계관을 넓혀주는 데에 여행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허소라, 30세 SK C&C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그만두고 6개월간 멕시코, 쿠바,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여행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여행인솔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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