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부부, 세계여행을 가다

김종훈, 김하원 부부의 이야기

부부란 무엇일까?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 만나 가정을 이뤄 평생 함께 살아가는. 그 특별한 관계만큼이나 부부가 함께하는 세계여행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온전히 24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동행 삼아 길고 긴 여행을 함께 한 부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여기 서로의 관계에 의문을 갖고 여행을 떠났다가 결국 답을 찾아 돌아온 한 부부가 있다. 김종훈(이하 훈), 김하원(이하 원) 부부의 세계여행기를 들어보자.

여행 막바지에 네팔, 안나푸르나. 1년간,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35개 국가, 120개 도시를 여행했다

길을 나서기까지

Q. 세계여행을 할 때, 다양한 연령대의 여행자를 만났다. 경험을 중시하는 20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는 30대, 은퇴 후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50~60대 등. 그런데 40대 여행자, 특히 40대 부부는 만난 적이 없다. 아마도 아이들 키우고 한창 일할 때라 세계여행을 할 시기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두 분은 40대 부부다. 어떻게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었나?

훈 : 아주 오래전 일요일 아침에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이구아수(Iguazu) 폭포 아래서 엄청난 물을 맞는 사람들을 봤다. ‘참, 저런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언젠가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세계여행이란 건 내 인생에 가당치 않은 이야기였다. 일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겼을 때 문득 개인적인 삶을 한번 돌아봤다. 아내는 게스트하우스 2개를 운영하며 바쁘게 생활하고 나는 회사 일이 바쁘다 보니 거의 얼굴 볼 일 없이 살고 있더라. 결혼생활 8년 동안 아이를 가지려 계속 노력했는데 결국 안됐다. 의사에게 시술로 아이를 갖을 수 있는 확률이 낮으니 포기하라는 말도 들었다. 그때 당시 아내와 굉장히 많이 부딪쳤다. 서로 바쁘고 힘드니까 싸움이 잦았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 : 그렇게 심각했어?

훈 : 그럼 심각했지. 5년 뒤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 보이더라. 말 안 하고 쇼윈도 부부처럼 살거나, 매일 싸우면서 살거나, 헤어지거나.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둘이 함께할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계속 회사 다니고 아내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상황이라면 불가능했다. 그럼 다 놓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세계일주다. 회사도 그만두고 게스트하우스도 팔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Q. 하원 씨도 부부관계에 문제의식이 있었나?

원 : 물론이다. 시댁 문제, 성격 차이, 아이 갖는 것에 대한 문제. 이 사람을 아직 사랑하는데 너무 싸우고 또 너무 달랐다. 하나부터 백까지 다 다른데 술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는 거 딱 2개만 같더라. (웃음)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녔지만 내게 세계일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사치라는 생각도 있었고. ‘할 일 참 더럽게 없다. 배가 불렀구나. 아무리 애가 없어도 무슨 여행을 1년이나 해?’라는 마음이었다. 가족과 떨어지는 것도 싫고, 한식 못 먹으면 힘들어하는 데다 비행 공포증도 컸고.

훈 : 여행 이전에 아내가 이석증과 공황장애로 고생을 했다. 그 후유증으로 비행 공포증이 생겼다.

원 : 세계여행을 앞두고 루트를 짜면서도 비행기 얘기만 나오면 바로 긴장되고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갔다. 이석증은 귀에서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돌이 빠지면서 중심을 못 잡고 어지러운 병이다. 남편과 성격차이, 시댁과 갈등 때문에 이석증이 왔다. 낮은 자존감도 원인이었고. 사실 자존감이 높았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안 받았을 거다. 이석증이 너무 심해 공황장애가 오고, 공황장애 후유증으로 불안장애가 오고, 이게 비행 공포증으로 연결됐다. 세계여행이 전혀 내키지 않았는데 억지로 끌려갔다.

2016. 1. 2 출발 직전, 인천공항에서

Q. 비행 공포증을 안고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겨운 일 같다.

원 : 처음에는 모든 탈 것에 공포를 느꼈다. 남미에서 2층 버스도 그렇고 배를 탈 때도 불안이 너무 컸다.

훈 :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2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길리섬에 가는데, 배 뒤쪽에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더라.

함께한 여행, 함께한 사람들

Q. 어떻게 보면 여행에 불안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모르는 길을 찾아 도착한 목적지에서도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낯설다.

훈 :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뉴질랜드를 거쳐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됐다. 뉴질랜드는 양가 어머님이 오셔서 같이 여행했기 때문에 칠레 와서 마음의 짐도 덜고 너무 좋았다. 칠레 와인 여러 병을 사서 혼자 밤새 마시고 널브러져 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아내는 남미사랑 카페의 사건・사고 소식을 보면서 울고 있더라. ‘우리가 이런 데를 왔다니!’ 이러면서. 그때 페루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탄 버스가 강도를 당했을 때였다.

원 : 꼭 사건・사고가 무서웠던 것은 아니고 심리적인 이유였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지구 반대편까지 왔구나!’ 1년에 대한 심적 부담이 컸다. 매 순간이 나에게는 극기였다. 비행기 타는 것부터, 낯선 나라에서 적응해야 하고, 탈 것에 대한 두려움도 심하고. 불안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을 때였는데 남편은 옆에서 술 먹고 해롱대고.

훈 : 그 안전하다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동양사람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웃음)

Q.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훈 : 부모님이 오시게 된 건 전적으로 우리 어머니 생각이 컸다. 많이 오고 싶어 하셨고, 장모님은 혹시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우리가 2016년 1월에 출발했는데, 여행 초반인 2월에 뉴질랜드와 중반인 7월에 유럽으로 오셔서 함께 여행했다.

뉴질랜드 북섬에서 남섬으로 이동하는 페리에서 두 어머님

Q.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원 :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하는 게 힘들었고 두 번째 오셨을 땐 더 힘들었다. 3주 같이 여행하고 살이 쑥 빠질 정도였다. 스트레스받으니까 밥을 잘 못 먹게 되더라. 그때 남편과 많이 싸웠다. 너무 자기 부모만 챙기는 것 때문에 서로 실망하기도 했다.

훈: 나는 다른 것보다 해야 할 역할이 많아 힘들었다. 남자가 혼자다 보니 운전도 해야 하고, 무거운 짐 나르는 것도 내 몫이고, 내가 체력이 제일 좋으니 운전 후에 요리하는 것도 도와주고, 장도 봐야 하고. 우리 어머니가 보시기에 내 아들이 너무 고생한다고 여기셨던 것 같다. 각자 생각이 다 다르다 보니 그것을 조율하는 것도 힘들었다.

원 :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참 잘한 일 같다. 뭐든지 힘든 가운데 배우는 게 있지 않나. 부모님들은 패키지여행에 익숙한데, 자유여행은 다른 느낌이고 또 자식과 함께 한 여행이기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거라고 하셨다.

훈 : 다들 힘들었고 나름대로 마음고생 했는데 조금 지나면 힘들었던 것은 다 잊고 좋은 기억만 남는다.

Q.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도 큰 에피소드지만 1년 동안 여행하면서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나 사람이 있나?

훈 : 칠레 아따까마 사막에서 만나 함께 여행한 은영이라는 한국 친구와 이안, 멜라니 영국 커플이 생각난다. 아따까마에서 우유니로 넘어가는 2박 3일 투어를 찾다가 이들을 만났다. 함께 팀을 짜서 이동했는데, 투어 후에도 은영이와는 계속 동행했고 이안과 멜라니는 신기하게도 여행지마다 우연히 계속 마주쳤다. 남미 위쪽으로 올라가는 루트였는데,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만나고 콜롬비아 메데진에서도 우연히 만났다. 그들도 세계여행 중이라 루트가 비슷했던 거다. 그렇게 갈라파고스도 같이 가서 1주일 동안 함께 크루즈 여행을 했다.

이안, 멜라니 커플과 갈라파고스에서

원 : 그들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다음 여행이 유럽 대륙이었다. 영국 웨일스에 사는 이안과 멜라니가 우리를 초대해서 같이 저녁 먹고 하룻밤 자고 왔다. 남미에서 만나 함께 여행하다가 그들의 집까지 가서 묵고 그들이 해준 밥을 먹는다는 게 참 묘했다.

훈 : 그 친구들이 한국식당에서 비빔밥을 배워와서 만들어줬다. 우리랑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친구들인데도 남미 곳곳에서 만나 오랫동안 여행한 게 인연이 되었다. 은영이는 원래 영국에서 요르단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떠나기 전날 항공권과 숙박을 다 취소하고 우리랑 함께 더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프랑스까지 은영이도 함께 했다.

원 : 유럽에서는 주로 캠핑여행을 했다.

훈 : 처음에는 텐트 한 번 치는 데 3시간이 걸렸다. 영국에서 캠핑할 때, 새벽에 갑자기 비가 많이 왔는데 누가 우리 텐트를 막 두드리는 거다. 은영이가 자기 텐트에 물이 들어온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간단한 원터치 텐트라 물이 샜던 거다. 우리 텐트 입구 천막 아래 여유 공간에 작은 텐트가 쏙 들어왔다.

원 :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마치 이삿짐센터처럼 뚝딱, 뚝딱 텐트를 쳤다. 지금은 정말 텐트 잘 칠 자신이 있다. 캠핑을 하면 여행의 깊이가 달라진다. 꼭 추천하고 싶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호텔에 묵어도 캠핑 한 번 한 것만 못했다. 특히 유럽은 캠핑장이 참 잘 되어 있다.

훈 : 다들 밥을 사 먹는 것보다 캠핑하면서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릴에 고기 구워 먹고 밥 해먹은 일이 참 즐거웠다.

원 : 혼자 세계여행을 했던 은영이는 동생이지만 참 속 깊은 친구였다. 은영이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와 함께 여행할 수 있었을 거다. 덕분에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종종 연락하며 지낸다.

스위스 캠핑장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눈 앞에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따로 또 같이

Q. 부부관계를 개선하고자 세계여행을 떠났는데 어떤가? 그 목표를 이뤘나?

훈 : 충분히 이뤘다. 여행을 매개로 ‘나와 너’에서 ‘우리’가 되었다. 이전에는 서로 함께 있는 게 불편했다. 서로 돌보고 신경 써야 하는 게 불편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원 : 여행을 통해서 나에 대해 믿음이 커졌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남편에 대한 신뢰도 커졌다.

- 둘 사이의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훈 : 오랫동안 변화없이 산 것이 문제였다.

원 : 아이가 없는 게 되게 큰 거였다. 알게 모르게.

훈 : 그런데 아이가 있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문제는 변화 없는 삶이었다. 변화가 없다는 건 내가 주도적으로 삶을 바꾸지 않았단 뜻이 크다. 회사에서 말하는 자기계발과 내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은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계발 없이 회사생활 20년 동안 나는 닳는 느낌인데, 그게 불만족스러우면서 애가 없다는 핑계를 댔다. 사실 핵심은 그게 아닌데. 아이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지만, 남들은 아이를 키우는 시간만큼 서로 의지하고 믿고 엉키는 시간이 쌓인다. 그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했다. 세계여행이 우리에게는 신뢰를 쌓는 시간이었다.

Q. 갈등을 안고 여행을 시작한 것 치고 의외로 여행하는 동안 싸움은 적었던 것 같다.

훈 : 사실 난 처음 3개월이 힘들었다. 아내와 온종일 같이 있어 본 적이 없는데 여행하며 내내 붙어있는 게 어색했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중요한 사람인데 그게 없더라. 그래서 화장실에 많이 있었다. (웃음) 상대방이 안 좋아하는 것, 싸움의 조건을 잘 알기 때문에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또 여행 전의 삶은 닳던 삶이어서 나의 불만을 외부로 날카롭게 표출했는데 여행은 충전되는 삶이어서 예민할 이유가 없었다. 여행을 함께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각자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원 : 남편이 고산증 때문에 몸이 안 좋거나 과음해서 힘들어할 때면 눈치껏 혼자 투어가고, 각자 시간을 가지면 서로 기분전환이 됐다. 여행 막바지에는 남편에게 한 달간 자유시간을 줬다. 공황장애를 앓던 나를 돌봐 준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또 그만큼 믿음이 있으니까.

훈 : 집사람 먼저 한국으로 가고, 태국 란타섬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다닌 게 기억에 남는다. 세계여행을 떠나면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자유를 그때 느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오토바이를 샀다. (웃음)

태국 란타섬에서. 한국에서 후배가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Q. 여행 후, 배우자는 어떤 의미가 되었나? 이 사람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훈 : 여행 전에 아내는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상대였다. 결혼했지만 어쨌든 남인. 지금은 가족이란 느낌이 많이 든다. 이제 우리는 헤어짐에 대해 옛날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만큼 믿음이 있다. 함께 한 1년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던 시간으로 따지면 10년과 같은 시간이다. 사랑했던 연인, 아내, 그리고 전우애를 가진 동지도 넘어섰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니까 그만큼 믿음이 크다.

원 : 나도 똑같다. 예전에 너무 치열하게 싸울 때는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든든한 남편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그 생각이 바탕으로 깔려있다. 나와 평생 함께 갈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다.

Q. 개인적으로 세계여행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또 앞으로의 계획은?

원 : 세계여행 후에 자신감이 생겼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몸이 아팠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에 세계여행이 힘겹게 다가왔지만, 내가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 위기일 때 사람이 성장할 수 있다는 말에 120% 공감한다. 힘들었지만 여러 가지 병들이 나를 성숙하게 해줬다. 다른 교통수단에 대한 불안은 모두 극복했지만 비행 공포증은 여전하다. 지금도 여전히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마인드를 바꾸면서 극복하고 있다. 난 ‘세계여행도 씩씩하게 다녀왔는데!’라는 생각으로. 지금은 이런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볼 생각이다.

훈 : 세계여행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할 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당당하게 출근해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잘 닦여진 길이 익숙하고 편해 보여서 꼭 그 길로 가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길도 있다. 그 길로 가봤고, 그런데 그 길이 꼭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돌아와서 여행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돌아오자마자 취업해서 예전 회사 다닐 때와 비슷한 일을 했다. 이제 회사는 그만두고 내 일을 하려고 한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여행 커뮤니티를 만들고 온라인, 오프라인이 연계된 사업을 준비 중이다.


티티카카 호수를 배경으로 두 사람

김종훈 (48) 20년 동안 회사생활 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호텔리어였고, 여행 전에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 서비스 회사의 한국 지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여행책을 보면 떠나고는 못 배길 만큼 여행을 좋아한다.

김하원 (43) 호텔리어였던 시절에 남편을 만났다. 결혼 후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바쁘게 살았다. 남편 못지않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비행 공포증이 있지만 여행이 너무 좋아서 기꺼이 그 두려움을 감수하고 여행을 간다. 세계여행의 경험을 책으로 쓰고 있고 내년쯤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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