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쿠바

쿠바 여행기 1

LA와 멕시코 칸쿤을 먼저 들르긴 했지만, 우리의 세계여행은 쿠바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LA는 라틴아메리카로 가기 위해 잠시 들른 곳이고, 칸쿤은 우리 여행이 신혼여행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들른 여행지였다. 본격적인 모험은 쿠바에서부터 시작됐다.

멕시코 칸쿤에서 쿠바 아바나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를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내게 쿠바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 유명한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상과 영화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 속의 화려한 아바나(Havana)였다. 쿠바 소년과 미국 소녀의 애틋한 로맨스가 펼쳐진 영화 속 아바나는 화려하고도 로맨틱한 도시였다.

쿠바의 구도심 올드 아바나

그러나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아바나 구도심은 내 생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우리가 내린 구시가지 중심지에는 랜드마크로 보이는 호화로운 건물과 낡은 건물이 묘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흔히들 아바나를 ‘타임슬립’의 도시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마치 고전 영화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치노! 하뽕!’(이들의 언어로 치노 Chino는 중국, 하뽕 Japon은 일본을 뜻한다)을 외치며 달려드는 호객꾼들, 올드카가 내뿜는 매연, 개똥과 말똥이 굴러다니는 더러운 거리, 복구하지 않고 폐허 상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에 빨래가 주렁주렁 널려있었다. ‘저렇게 낡은 건물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그곳이 우리가 묵을 곳이라고 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호아끼나 까사였다. (Casa는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인 동시에 쿠바에서는 민박집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된다. 쿠바에서는 B&B처럼 자신의 집에 남는 방을 외국인에게 빌려줄 수 있다. 호텔보다 흔한 숙박 시스템이다.)

한국인이 많이 묵는 호아끼나 까사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우리는 옆 옆집 까사에 머물게 되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 로사는 철없지만 귀여운 아가씨였다. 오랜만에 손님이 온 것인지 무척 신나 우리에게 방 이곳저곳을 소개했다.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방 안에 깊이 배인 듯한 담배 냄새, 푹 꺼진 매트리스, 더러운 주방과 욕실에 뜨악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나는 화려한 휴양지 칸쿤에 있었는데 바다 건너 이곳과 그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문득 앞으로의 여정이 걱정됐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오빠, 집에 가고 싶다.”

“우린 집이 없어.”

“…”

맞다. 우린 결혼식 올리고 열흘 만에 집도 절도 없이 한국을 떠나왔다. 돌아갈 집이 없었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우리에게 쿠바는 난이도 ‘상’의 여행지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는 개인이 인터넷을 소유할 수 없고 공공 인터넷만 있다. 인터넷 카드를 사서 공원 같은 곳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본격 검색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속도도 느릴뿐더러 분명히 연결 해제를 했는데도 다음에 접속해보면 내 데이터는 이미 소진되고 없었다. 이 때문에 미리 숙소를 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매번 까사에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그날의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화폐는 이중체계여서 외국인 화폐 쿡(CUC)과 현지인 화폐 모네다(MONEDA)를 잘 구분해야 했다. 우리가 가져온 미국 달러를 후하게 환전하려면 으슥한 곳에서 암 환전을 하는 모험도 감수해야 했다. 외국인을 위한 대중교통 정보가 부족한 탓에 주로 올드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치열한 흥정은 필수였다.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영웅 체 게바라에 대한 동경과 미국 영화가 만들어낸 쿠바의 이미지는 얼마나 왜곡된 환상이란 말인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을 실감하며 우리는 쿠바여행을 시작했다.

올드 아바나의 깨끗한 건물은 거의 호텔이거나 국가기관이다

예술극장을 배경으로 밤의 아바나

사람들이 모여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곳은 인터넷이 되는 곳!

아바나를 대표하는 올드카와 까삐똘리오(국회의사당)

아바나의 이런 풍경은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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