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우부디언(Korean Ubudian)이 사는 법

구름, 바람 가족의 이야기

10년째 발리(Bali) 우붓(Ubud)에 사는 특별한 가족이 있다. 빌라를 운영하는 부부는 자신들을 구름, 바람이라고 불러주길 원한다. 한국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코리안 우부디언(우붓에 사는 외국인을 이르는 말)으로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A2 빌라, 그린빌라에서

한국에서의 삶 그리고 우붓에 온 이유

- 두 사람이 별명을 쓰는 것이 참 재밌다. 이유가 무엇인가?

구름 : 나이를 기준으로 위, 아래 따지는 문화가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친구로 알려진 오성과 한음도 5살 차이가 나듯이, 사실 이건 우리 전통이 아니다. 나이를 따지는 문화는 일제의 식민지 계급 문화, 군대 문화에서 온 거로 생각하는데 그게 예의라는 것으로 잘못 포장돼 있다.

바람 : 생물학적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구름 : 한국식으로 한다면 주변 한인들이 나를 형 정도로 불렀을 거다. 내가 구름이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는데,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몇 개월만 지나면 적응한다. 구름이라고 부르면 내가 나이가 더 많더라도 상대가 쉽게 자기주장을 한다. 눈 크게 뜨고 “구름, 죄송한데 제 생각은 좀 다르거든요.”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고집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 사실 우리도 처음에 구름, 바람이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구름 : 아마 내가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2~3살 어렸으면 쉬웠을 거다. (웃음)

민재 : 아빠랑 많이 하던 이야기인데, 한국에서는 나이가 같은 사람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데도, 친구의 범위를 너무 좁히는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자기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발리에는 언제 그리고 왜 오게 되었나?

바람 : 첫째 민재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바로, 2009년 3월에 왔다. 아이들을 공동육아로 키웠는데 민재가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선생님과 소통 문제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공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구름 : 선생님이 좋으면 혹은 우리가 더 노력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1년을 지켜보니 시스템의 문제더라. 한국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가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도시 인구가 너무 많고 학생 수도 너무 많아서 개개인에 대한 배려가 힘들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교육은 어떤 제도로 만들어도 그 끝은 대학이다. 수시든 정시든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어떻게 하면 대학을 잘 갈 수 있을까에 맞춰진다.

바람 :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움직였다고 하지만 당시에 우리 둘도 절박했다. 맞벌이를 했는데, 둘 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그 생활 자체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영혼을 팔아서 월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수영장이 있는 A2 빌라의 모습

-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는 참 어렵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은 어떘나?

구름 : 나는 처음에 pc 통신회사에 입사했다. 당시 통신회사가 4개였는데, 경쟁사도 다 같이 모여 체육대회를 할 정도로 우리끼리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999년에 인터넷 ‘닷컴 시대’가 오면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대기업에서 일하게 됐다. 국민윤리 시간에 나오는 직업 선택의 이유가 자아실현이고 그다음이 경제적 욕구라고 하지 않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10년까지는 자아를 실현하며 쭉쭉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되니 이 성장이 내 가치관하고 부딪치는 순간이 왔다. 내가 아무리 회사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회사 때문에 나를 속여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우리가 파는 제품을 실제보다 훨씬 더 멋지게 포장해야 하고, 팀장급이 되면서는 정치였다.

바람 : 그때 구름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콘텐츠 업무 기획자일 때는 재밌게 일했는데 인사 쪽으로 옮기면서 사람들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되게 힘들어했다. 위에서 피가 날 정도로. 그래서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쉬게 되었다. 때마침 민재도 대안학교로 옮기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도시형 대안학교는 우리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두 명 중 한 명은 일해야 하고, 또 늦게까지 야근하며 일해야 도시의 삶이 이어질 수 있었다. 소비를 계속 자극하는 삶도 떠나고 싶었다.

- 소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도 우리 사회에서 소비를 조장하는 상황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시도 때도 없이 광고에 노출되는 것도 그렇고. 결국 사놓고 쓰지 않는 물건이 태반이다.

구름 : 도시에서는 소비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다. 소비함으로써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곳이 도시다. 내가 소비해야만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니까 나를 드러내려면 소비해야 하고, 소비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적게 써도 되는 곳에 살아보자’였다.

바람 : 요즘 많이 나오는 자발적 가난을 생각하면서, 지금 벌이보다 1/3로 줄더라도 어차피 적게 쓸 거니까 시골로 이주할 생각을 했다. 10여 년 전 아직 한산했던 제주도, 공동체가 많이 생기고 있던 지리산을 고려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결정적으로 역마 끼가 있어서 해외에 나가 살아보고 싶어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못 움직일 것 같았고, 가려면 지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1년만 살아보자 생각하고 왔는데 집도, 짐도 다 처분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시골로 가서 가볍게 살 마음이었다.

- 이 시점에서 민주와 민재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나? 한국의 생활이 생각나는지?

민주 : 나는 5살 때 발리에 왔기 때문에 한국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발리에서 산 시간이 더 많다.

민재 : 한국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는 해에 발리로 왔기 때문에 한국의 학교생활이 조금 기억난다. 한국학교와 발리학교를 비교하면 이곳이 더 좋다.

왼쪽에서부터 바람, 민주, 민재

전 세계 마이너리티가 모이는 곳 우붓

- 우붓은 어떤 곳인가? 이곳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바람 : 사실 여기 살다 보면 머리나 옷처럼 치장하는 것에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소비도 많이 줄었고, 치장에 대한 욕구도 줄었다. 왜냐면 머리를 하고 옷을 입고 어디 갈 데가 있어야 하는데 그날이 그날이라.

구름 : 어떤 패션을 하든 누구도 비난이나 지적을 하지 않는다. 쿨하다, 멋지다 이런 얘기는 하지만. 우붓의 삶은 마이너들의 삶이다. 선진국에서 그 나라 시스템이 싫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과 이야기해보면 우리와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체제 저항적이고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을 아끼고 인류애로 가득 찬 사람들 혹은 특이한 사람들이 많다.

바람 : 여기 살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그러면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이나 어떤 말을 할 때,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하는 법은 없는 거다. 자기 나름의 가치관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우부디언 친구들과 함께

- 우붓에 사는 외국인들을 우부디언이라고 부르는 것 보면 관광객 말고도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것 같다.

구름 : 우붓은 외국인 커뮤니티가 발달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현지인들이 발리 고유의 문화도 지키면서, 다양한 외국 문화가 혼재된 게 참 매력적이다. 살사 동호회 같은 곳에 가보면 되게 신기하다. 여기는 시골인데 또 도시적인 느낌이 난다.

- 우붓에서 해야 할 것에 살사를 추천해주셔서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살사는 남미가 유명하지 않나. 구름, 바람 가족도 살사를 배운 적이 있나?

구름 : 민재가 배운 적이 있다. 예민한 사춘기에 살사를 배우면서 부드럽게 청소년기를 넘긴 것 같다. 민재가 키가 크니까 서양 아줌마들이 같이 춤추는 걸 좋아했다. 이곳 아줌마들은 한국에서 말하는 아줌마와 느낌이 다르다. 나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데, 자존감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서 내가 먼저인 거다. 아이들 학교에 가도 누구 아빠인지가 아니라 이름을 먼저 묻는다. 누구의 엄마, 아빠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중요한 거다. 그렇다 보니, 민재도 살사 커뮤니티에서 가장 어린 막내가 아니라 한 사람의 멤버로 존재 할 수 있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인두스(Indus)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살사 파티

우붓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 가족 간의 유대

-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우붓으로 이주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름 : 이곳에 산 9년 동안 최대 성과는 우리 가족이다. 한국 같았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고 주말에는 약속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면 내가 시간을 내줘야 하는 거다. 근데 여기서는 아침에 눈 뜨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아내와 같이 밥을 먹고 그 후에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거기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또 서로의 사소한 생활 습관 같은 걸로 대화한다. “너는 왜 수건이나 가방을 꼭 문고리에 걸어놓니?”, “너는 왜 양말을 꼭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니?” 한국 같아서는 비난을 할지언정 그걸로 대화하지는 않는다. 대화할 시간이 없으니까.

바람 : 왜 수건을 문고리에 걸어 놓는 습관을 갖게 됐는지 과거까지 거슬러 가 대화하면서 상대방이 그 습관을 지닐 수밖에 없는 원인과 과거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네가 이런 성장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습관을 갖게 되었구나. 이해는 된다. 하지만 불편하니까 고쳐줬으면 좋겠다.”(웃음)

구름 :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동안에도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친구들과 어땠는지 많이 대화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면 하루가 다 간다. 한국에서는 밤 10시쯤 돼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느낌이지만 여기는 밤에 할 게 없는 곳이라 해지면 잘 준비를 해야 한다.

- 단조로운 생활이지만 그 속에 삶에 진짜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바람 : 한국에서 바쁘게 살다가 발리 와서 1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보냈다. 나를 아무도 안 건드리고 해탈한 느낌이랄까?

구름 : 스님들이 왜 출가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람 : ‘관계가 끊기니까 이렇게 행복하구나!’ 한국에서 어쩔 수 없이 얽혀있던 인맥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진정으로 오래 가야 할 관계만 남아서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될까?’ 조바심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정말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별 것 아니고 사소해 보이지만 잔잔한 물결 같은 감정들이 ‘이게 행복이구나.’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 많았다.

구름 : 나는 그 잔잔함 속에서 우리 네 명이 서로에 대한 신뢰, 유대, 연대가 굉장히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 민재도 그렇게 생각하나?

민재 : 맞다. 하지만 꼭 발리에 와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 온 게 물론 도움은 됐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시간을 정말 잘 보낸 거 같다. 대화라든지. 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에 대화를 안 할 수도 있지 않나?

구름 : 그런데 사실 발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밤 10시 전에 집에 오는 일이 드물었을 거다. 그럼 민재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었을 거고, 주말에는 자느라 바빴겠지. 그리고 민재가 중학생이 돼서야 ‘이제 중학생 됐으니까 말이 좀 통하네! 얘기 좀 할까?’ 하면 아들이 아빠를 외면한다. 민재하고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여러 이야기를 해 왔다. 그러니까 서로 신뢰가 쌓여있는 거다. 이 사람하고는 얘기 좀 할만하다는.

구름, 바람 가족의 식사 초대를 받은 날

민재의 여행 이야기

- 민재가 중학생 때부터 혼자 여행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민재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바람 : 민재가 중2 때부터, 방학 때마다 혼자 여행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우리가 같이 가서 너는 너 혼자 다니고 올 때 같이 오자고 했더니, 그게 무슨 혼자 여행이냐고 하더라. 그때 마침 민재가 한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전에는 아빠가 다 준비했던 것을 민재가 준비했다. 아빠한테 짐 부치는 것도 물어보고, 비행기 타는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그해 겨울에 민재 혼자 여행을 갔다.

민재 : 그때가 완전한 혼자만의 여행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제주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갔는데 발리에 여행 오셔서 인연이 된 분이 하는 곳이었고, 거기 3주 있으면서 부산 할머니 댁도 다녀오고 서울도 다녀오고 했다. 그 이후에 중3 때 인도로 여행을 가면서 여행 레벨이 확 높아졌다. 원래는 유럽이나 선진국을 가고 싶었는데, 선진국은 나이 제한이 있었다. 숙박시설에 보호자 없이 미성년자가 숙박할 수 없어서 인도에 가보기로 했다.

- 사실 내가 부모고, 내 아이를 여행 보낸다면 스무 살이 넘어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걱정되지 않았나?

바람 : 걱정은 됐지만 아이가 이미 하기로 결정했고 그 이후 걱정은 아무 소용이 없지 않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상황에 잘 대처 하도록 마음속으로 빌어주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어쨌든 민재의 여행에 대해 가족 모두 찬성을 했으니 그 여행의 목표가 잘 이루어지도록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인도에 갈 때는 민재 스스로 여행경비를 모으고 싶다고 해서 모금을 했다.

민재 : SNS에 글을 올려서 후원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모였다. 내가 이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와 여행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 여행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 등을 글로 정리해서 올렸다. 물론 아빠, 엄마 지인들의 도움이 컸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다.

바람 : 모금을 하는 취지의 밑바탕에는 나의 이번 여행을 도와준다면, 나도 그 이후에 누군가를 도와서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하겠다 혹은 지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민재 : 저 스스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 후원이 잘 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 여행의 취지와 경비를 마련한 방법이 참 인상적이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주로 어디서 무엇을 했나?

민재 :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인도 북쪽 다람살라의 탁아소에서 한 달간 봉사활동을 했다. 웹 사이트에는 성인만 봉사자로 받는다고 돼 있었는데, 일단 가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첫날 무작정 찾아갔는데 직원분이 자기는 권한이 없으니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내보라고 했다. 메일로 문의했더니 원칙은 성인만 받지만, 하루 먼저 해보고 할 수 있겠으면 계속 오라고 해서 그 후에 계속 봉사하게 됐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밥 먹여 주고, 기저귀 갈아주는 일을 주로 했다.

- 인도여행 이후에도 계속 여행하고 있나?

민재 : 그 후에는, 1년 전에 친구랑 네팔로 여행을 갔다. 트레킹 코스를 짜서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 내가 다녔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나흘 동안 아이들과 놀아주고 다시 제주도도 가보고 했다.

구름 : 나는 민재가 자기가 자랐던 어린이집에 다시 가보려고 생각한 게 신선하기도 했고,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과 다른 방법으로도 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 희망적이었다. 공동육아에 좋은 사례를 남긴 것 같아 뿌듯했다.

- 민재가 한국에서 자랐어도 이렇게 성장했을까 궁금해진다. 어린 나이에 여행을 가고 세상을 배워가는 데에 어떤 힘이 배경으로 작용했을까?

바람 : 가족 간의, 구성원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된 것 같다. 그게 나아가서 사회에 대한 신뢰와 바깥세상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민재는 이 사회가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에게 해코지하려는 사람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낯선 곳에서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들은 우리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민재가 한 번, 두 번 여행하면서 몸소 깨달은 것 같다. 결국 학교 공부도 부모의 교육도 다가 아니고 스스로 경험한 것까지 그 모든 것을 통해서 민재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혼자 여행 보내기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들을 얼마든지 거리낌 없이 하고 잦은 실패도 하면서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팔 안나푸르나에서 민재

발리에 와서 어려운 점, 돈 그리고 이방인

- 발리에 와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구름 : 돈. 경제적인 거다. 숙소가 우리 수입원의 전부다. 한국에서 우리는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돈 때문에 큰 제약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다 이곳에 와서 소득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3년을 보냈다. 모아둔 돈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공포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 심리 참 재밌는 게 잔고가 1억 밑으로 떨어지면 공포가 밀려오는데, 천만 원 밑으로 떨어지면 공포가 사라진다.

- 될 대로 되라 이런 심리인가? (웃음)

구름 : 그런 것도 있는데. 그런 삶이 길어지다 보면 ‘돈이라는 게 필요하면 어떻게든 생기는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바람 : 발리에 와서 돈에 대한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 돈은 우리를 거쳐갈 뿐이다. 돈은 저기에서 우리에게 왔다가 영원히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 우리한테 왔을 때, 이것을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그리고 얼마나 잘 쓰느냐가 중요하다. 그게 우리가 성장하는 바탕이 돼야 한다. 돈이 흘러와서 흘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고 굳이 쥐고 있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사고 싶은 것에 소비를 아끼지 않았던 예전과는 다른 차원이 되었다. 아마 우리 가계부를 보면 (적은 돈으로 4인 가족이 생활하는 것에) 놀라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구름 : 아이들이 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현지 학교에 비하면 학비가 비싸다. 그런데도 등록금 계속 내면서 우리 가족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 말씀을 듣고 보니, 돈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돈이 아주 많아야 하는 게 아니라 돈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 같다.

바람 : 언젠가는 이 형태를 더 이상 유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잔고가 몇백만 원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아 우리가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별로 걱정되지 않더라.

- 지금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았나?

구름 : 이 나라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우리가 호주나 캐나다로 이주했다면 지금쯤이면 최소 영주권 정도는 받았을 텐데 여기는 영주권 자체가 없고 외국인들은 1년짜리 장기비자를 연장하면서 산다.

바람 : 여기 사는 외국인들은 20년을 살아도 나는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구름 : 현지인과 결혼해도 마찬가지다. 공동체가 튼튼한 사회는 그 공동체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한테 소외감을 준다. 아무리 노력해도 공동체 일원이 될 수 없으니까. 처음에는 나도 ‘마을 이장선거 나가서 인간극장 한번 나가야지’하는 생각이 있었다. 동남아로 이주해 마을 이장이 된 최초의 한국인 이런 것을 기대했다. 그때는 이곳 사람들을 낮춰본 것도 있다. ‘한국에서 배운 기술들을 가르쳐 주면 좋아하겠지?’ 그런데 와서 보니까 이 공동체는 여기 태어나야만 그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바람 : 그야말로 삶과 죽음을 함께 하는 공동체인 거다. 사실 우리도 공동육아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 안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따뜻함도 많이 느꼈고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공동체 바깥의 배타적인 부분을 느낀 후에 내가 속했던 공동체를 바라보니 그 태도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느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사원 혹은 회관에서 현지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가 자주 열린다

힌두력 설날인 녀삐(Nyepi) 전날, 마을별로 악령을 상징하는 모형 ‘오고오고’를 만들어 대회를 연다

마치며 : 여기 혹은 거기에서 살아가기

- 나 같은 경우 한국의 교육제도가 싫기도 하고 외국 생활에 대한 호기심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사회의 시스템이 싫다면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해야지 회피하는 것이 맞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생각하나?

구름 : 나도 그런 죄책감이 있다. 한때 돌 좀 던졌기 때문에 (웃음) ‘변혁을 꿈꿨던 사람이 그걸 두고 그냥 왔네?’라는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겠구나’ 라는 무력감 때문에 떠나왔고 한국의 부정적인 면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아주 멋진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는 거기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여기는 여기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또 이런 생각도 한다. ‘발리는 한국과 달리 미세먼지가 없어서 좋다.’ 그런데 그게 여기 ‘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이냐면, 여기 자체의 자연환경이 좋은 것이지 항상 한국과 비교해서 뭔가 좋은 점을 찾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이다.

바람 :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떠나 온 이유가 거기가 너무 싫어서 떠나온 것이라면 여기에서 안 좋은 이유를 찾아 또 새로운 곳으로 계속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구름 : 하지만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

바람 : 나쁘지는 않지. 어떤 삶도 나쁜 삶은 없다. 그런데 떠나는 동기가 여기도 좋지만 거기는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주는 곳이기에 떠난다면 떠나온 곳에 대한 미련이 덜 하지 않을까?

※ 민재가 중국 상하이로 대학을 가고 구름과 바람이 베트남에서 일하게 되면서 현재 A2 빌라는 휴업 상태다. 머지않아 구름과 바람이 다시 우붓에서 우리를 맞아 줄 날을 기다려본다.

A2 빌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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