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과 함께한다는 것

12년 전 3살 때 우리에게 온 갈색 푸들 행복이는 올해로 15살이 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80대 노인이다. 결혼하고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게 된 후로 자연히 행복이를 볼 수 있는 날도 줄었다. 문득 보고 싶을 때, 좋아하는 간식을 사 들고 일부러 찾아가면 행복이는 더 늙어 있었다. 인형처럼 복슬복슬한 털은 거칠어졌고 하얗게 바랬다. 눈동자는 더 뿌예졌고, 배에는 검버섯이 피고, 등에는 오돌토돌 종기가 늘어 있었다. 마른기침도 자주 했다.

행복이의 외모는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길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행복이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울음 섞인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 덜컥 겁이 났고 그때마다 나는 두려움을 꾹꾹 누르며 생각을 고쳤다. 흐르는 시간은 막을 수 없고,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기 마련이라고.

어제는 그렇게 다 잡아 온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다. 부모님 집에 뭔가를 가지러 잠깐 들렀는데 집에는 행복이 밖에 없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더니 늙은 개는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도 못 듣고 자고 있었다. 겉옷을 벗어 소파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올 때까지 행복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숨 쉬느라 배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코도 골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서 가져가야 할 물건을 챙기는 동안, ‘전에는 이 정도로 모르진 않았는데… 깨지 않으면 다시 조용히 나가야 하나?’ 생각했다. 혼자 있던 행복이가 심술부리느라 어질러 놓은 빨랫감을 다시 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얼굴이 “누나 언제 왔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뒤늦게 격하게 인사를 하고 간식을 챙겨줬다.

마음의 준비를 한들 상실의 슬픔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전에 키웠던 강아지들이 남긴 슬픔의 무게를 기억하는 나는 행복이가 죽은 후의 아픔이 벌써 두렵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세상에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감당해야 할 필연적인 슬픔도 있는 것을. 그저 마음속으로 매일 기도 할 수밖에.

“내 눈에는 여전히 예쁜 강아지 행복아.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이름처럼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좀 더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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