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명상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가끔 정규수업 이외에 특별수업을 진행한다. 내용은 매번 다르다. 숙련자 동작을 위한 심화 수업이거나 요가 동작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해부학 등이다. 이번 달에는 내가 관심 있는 ‘명상’을 주제로 한다기에 신청했다. 평소 일렬로 매트를 깔고 앉아 동작을 취하던 공간에서 수강생들이 선생님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모여 앉으니 새로운 장소에 온 것 같았다. 선생님이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요가 선생님은 접시에 한가득 바나나를 담아 들고 왔다.

“여러분 오늘은 음식 명상을 할 겁니다. 인도 아쉬람에 가면 부엌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어요. “부드러운 음식은 여러 번 씹고, 딱딱한 음식은 마셔라.” 딱딱한 음식을 마시라니 참 이상한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이냐면 딱딱한 음식은 즙이 되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씹어 먹고, 부드러운 음식이나 액체 또한 꼭꼭 씹어서 먹으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음식을 입에 넣고 삼키는 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기 전에 바라보고 입에 넣어 씹고 삼키기까지 모든 순간과 그 순간에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관찰하는 것이 음식 명상입니다. 사실 바나나는 굉장히 흔한 과일이죠.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이 안에 우주의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씨를 뿌려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가 하나의 우주죠. 또 생각해보세요. 하필 세상에 있는 수많은 바나나 나무의 열매 중에 이 바나나가 배에 실려 우리나라로 와서 제가 가는 마트에 진열되었고 저에게 선택되어 여기 여러분 앞까지 왔어요. 자 이제 여러분이 바나나를 직접 골라 가셔서 바나나와 여러분만의 시간을 가져 보세요. 구석에 가서 드셔도 좋고요. 편하게 시간을 보내시면 됩니다.”

아침 겸 점심으로 죽을 먹어 배고팠던 나는 큰 바나나를 골랐다. 색깔이 노랗고 탐스러운 바나나를 쥐고 창문 아래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바나나와 나만이 마주한 이 순간은 참 낯설고 생소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금 막 바나나를 맞닥뜨린 것만 같았다. 오늘 만난 이 바나나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나는 오감을 총동원해보기로 했다.

먼저 두 손 위에 바나나를 올려놓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무 블라인드 틈새로 햇빛이 들어와 바나나를 비추고 있었다. 바나나는 햇빛을 받아 선명한 노란색을 띠었다. 예뻤다. 바나나를 뒤집어 보았다. 어디에 긁힌 건지 몇 군데 갈색 상처가 나 있었다. 그렇더라도 바나나는 고와 보였다. 바나나 양 끝의 꼭지도 각각 바라보았다. 다시 두 손위에 평평하게 놓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와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이렇게 예쁜 바나나는 곧 나에게 먹혀 사라질 것이다. 어디선가 슬픔이 샘솟듯 올라왔다. 눈물이 조금 났다. 바나나와 내 앞에 놓여 있는 이별. 내게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예고된 이별에 앞서 바나나를 좀 더 자세히 느끼고 싶었다.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껍질에서 약간 꼬릿한 냄새가 났다. 바나나 송이에서 뜯긴 윗부분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 같다. 손가락으로 껍질에 마찰을 일으키며 뽀드득 소리도 들어봤다. 두 손으로 꽉 잡아보기도 했다. 적당한 차가움과 단단함이 느껴졌다. 손안에서 전해지는 두께와 단단함이 약간 외설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바나나와 연관된 많은 상념이 스쳤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멸종위기인 바나나, 남근에 비유되는 바나나.

오래 전 인기있었던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캐리가 러시아 화가 알렉산드르와 데이트를 하는데, 그는 진지하게 예술 얘기만 한다. 캐리가 농담 좀 해보라고 하자 그는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은 바나나를 캐리에게 내일 아침으로 먹으라며 준다. 캐리가 의아해하며 클러치에 바나나를 넣자 그는 말한다. “그렇게 남자가 좋아요? 바나나를 넣고 다니게?”

그리고 머릿속에 스치는 누군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지는 코미디 장면들…

이제 미각만 남았다. 껍질을 벗기니 아까와 달리 향긋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났다. 하얀 바나나 속살 가장자리로 껍질이 만들어 낸 모습은 한 송이의 꽃 같다. 한입 베어 물었다. 굳이 씹지 않아도 입안에서 금방 뭉개질 만큼 부드럽다. 삼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달콤한 맛은 없다. 우유같은 부드러움이 있고 아직 덜 익어서인지 상큼한 맛이 강하게 난다. 바나나가 혀에 남긴 마지막 맛은 떫다.

눈앞에 있던 바나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바나나는 어디로 갔을까? 벗겨 낸 껍질은 완벽한 꽃의 모양이 되었다. 껍질을 두 손으로 감싸니 축 늘어진 한 마리의 죽은 동물 같다. 곧 부패가 시작되고 노랗게 탐스럽던 껍질은 까맣게 산화될 것이다. 분명 내 눈앞에 살아 있었던 대상이 이제는 없다. 눈앞에 있던 대상의 부재, 이별의 상실감을 염려한 것과 달리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씹어 목구멍 안으로 넘긴 바나나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 나의 위 속에 있다. 내 뱃속에서 느껴지는 포만감이 바나나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어느새 바나나는 내가 되었다. 나의 피, 살, 혹은 에너지. 기분이 좋다. 나마스떼. 옴 샨티 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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